수많은 멋쟁이들을 파헤쳐보면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만의 스타일이라 함은 꼭 새로운 개척이 아니더라도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에서도 결정된다고 본다.
필자 또한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봤음에도 도저히 명확한 명제를 끄집어낼 수 없었으니 그저 흰 바닥 위에서 그들의 스타일을 대조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참에 대조해보던 과정을 글로 한번 남겨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지아니 아넬리(Gianni Agnelli)였다.
아시다시피 피아트(FIAT)의 회장이셨고 특유의 개성으로 패션계에서도 꽤나 이름이 자자한 이탈리아 남자이다.
기존의 복식(attire)을 약간 트위스트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전혀 유치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시계를 셔츠 소매 위에 착용한다던지, 버튼다운 셔츠의 버튼을 풀어 연출한다.
수트에 버튼다운 셔츠를 입는 것도 모자라 그 버튼을 푼다니, 기존의 복식을 마구 어겨버린다.
하지만 그놈의 복식을 깨부섰기에 대단한 것이다. 그는 복식을 넘어선 "패션"을 아는 사람이다.
그가 패션계에 공헌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일단 so 쿨하고 마초적인 이미지의 소유자다.
사진을 살펴보면 수트에 하이킹 부츠를 신었고 병따개로 장식한 벨트에 고글까지.
단순히 봐서는 우스꽝스러운 아저씨이지만 그가 지아니 아넬리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는 마치 원인과 결과가 서로 치환되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기에 지금의 지아니 아넬리가 있는 것일 수도)
근대에 와서는 스프레차투라(링크)라는 명목 아래, 자연스러움을 연기하지만 그는 연기 같은 거 모르는 쿨한 남자이다.
말하는 스타일은 어땠을지, 생전에 어떤 술을 좋아했을지, 그의 취미는 무엇이었을지 꾸준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두 번째 인물은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다.
스티브 맥퀸은 필자에게 아메리칸 캐주얼이 얼마나 우아하고 멋있는지 가장 잘 알려준 사람이다.
지아니 아넬리와는 구분되는 미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매력을 깨닫게 된 건 영화 대탈주를 보고 난 후였다.
너무나도 무심하게 걸친 A-2자켓, 그 자켓을 벗으면 매력이 드러나는 팔 잘린 스웻셔츠에 WW2 오피서 치노팬츠 착장은 정말 인상 깊게 본 장면 중 하나다.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에서는 아예 대탈주 라인을 만들어서 이를 복각하는데 섬나라 사람들의 오타쿠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면목이다. 이건 거의 뭐 스티브 맥퀸 팬들을 위한 굿즈에 가깝다.
또 다른 착장을 살펴보자. 이는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다.
바라쿠타의 G-9 자켓, 골이 깊은 니트에 페르솔 714를 쓴 모습, 아마 스티브 맥퀸이 가장 추구했던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여유로우면서 알맞은 니트웨어를 사랑했는데 중년의 부끄러운 몸을 아름답게 감싸주는 니트웨어의 선택은 무엇과 비교해도 가장 멋지게 비춰진다. 아래는 그의 조금은 더 다양한 모습들이다.
과장됨을 찾아볼 수 없는 맥퀸의 매력을 알아봤는데 어쩌면 맥퀸만큼 심플하지만 모던함이 돋보이는 한국인이 계시다.
세 번째 인물은 김환기 화백이다.
샌프란시스코 마켓을 운영하시는 한태민 사장님께 힌트를 얻어 꽤나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진과 더불어서 그의 그림보다 그의 스타일을 탐구하는 건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그만큼 김환기 화백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안경이었다. 하단이 각진 파리지엥 안경(링크)을 즐겨 쓰시는 걸 보고 그의 배경이 궁금해졌다.
불혹의 나이를 거치고 뉴욕과 파리를 오가던 그가 받은 영향은 미술뿐만이 아니였으리라.
그의 모습은 지금 봐도 모던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샴브레이 셔츠에 치노를 조합함에도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된다.
두 번째 사진 같은 경우도 래글런 소매의 트렌치코트에 울 조합이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사토리얼리스트를 운영하는 스콧 슈만이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지만 완벽한 룩을 본 기억은 없어. 패션 잡지 화보가 완벽하면 공감이 되지 않고 영감도 얻지 못하지. 그래서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사람의 룩에서 멋진 부분을 몇 가지 찾아 그것이 이미지의 초점이 되도록 노력해."
그의 아가일 양말이 종아리까지 올라오지 않아도 그는 나에게 깊은 영감의 대상이다.
네 번째 인물은 루카 루비나치(Luca Rubinacci)이다.
나폴리 출신에 현재 루비나치 사르토 가문을 이어가고 있는 남자이다.
20세기에 영국인들이 나폴리에 휴향 차 방문하면 나폴리의 기온에 맞게 몇 개월 간 하늘하늘하게 입을 수트가 필요했는데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던 곳은 루비나치 가문과 연관이 깊다.
당시 루비나치 가문은 아톨리니 가문과 함께 런던하우스라는 이름 아래 그 수요를 감당해갔었는데 나폴리임에도 런던하우스인 이유는 당시 런던의 새빌로우의 권위가 너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라고..
각설하고 그의 스타일을 한번 살펴보자. 인스타그램으로 나름 접근성 좋게 볼 수도 있는데 그냥 pinterest에서 다 따왔다.
여유로운 바지 통과 과감한 색감, 심지와 안감을 많이 쓰지 않음에 편안한 느낌과 특유의 엘레강스함을 자아해 낸다.
보통 고지선이 높은 수트를 입거나 다양한 원단을 통해 이태리 수트를 대표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워낙 옷이 많은 분이라.. 패스.
브라운 계열의 구두를 통한 악센트와 부토니에를 꽂은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루비나치가 생각이 난다.
포멀웨어 시장이 점차 캐주얼을 가미해가는 흐름에서 그의 스타일링은 꽤나 영감이 된다.
물론 1년에 수트를 입을 일이 거의 없음에도 그의 패션을 보다 보면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는데 아마 장차 내가 늙어감에 슬픔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일종의 설렘 때문인 걸까.
앞서 4명의 거장들을 살펴봤지만 사실 세상엔 멋쟁이들이 정말 많다. 한때 일본 DC브랜드에 빠졌을 땐 레이 가와쿠보의 위대함을 알게됬고 드리스 반 노튼 성님 컬렉션에 빠지게 된 뒤로는 그의 치밀한 계산에 놀랐다. 아방가르드하고 예술성 있는 작품들도 존경을 마다하지 않고 정보력이 부족해 소개하지 못한 숨겨진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필자의 일상복 기준은 위에서 말한 패션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옷으로 나를 표현하는 시대라지만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옷들이 나오는 것 처럼 개인이 가진 멋의 기준은 다 다르며 그러기에 더욱 풍족함을 느낀다. 각자만의 워너비를 잘 간직하며 재밌는 얘기들을 많이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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